여섯 번째 촛불; 사랑하는 괴이에게
w/hakano
흔히들 말하는 요괴나 귀신이라는 것의 존재 의의는, 좋은 것을 가까이하고 싫은 것을 터부시하게끔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낭설에 불과하다.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청년을 바위에 꽁꽁 묶어서는 악신惡神에게 산제물로 바친다거나, 정신이 돌아버린 여자를 귀신이 들어갔다며 그것을 빼내기 위해 온갖 종류의 고문을 행한다거나……. 당연하게도 악신 따위에 형체는 없으니 산제물로 바쳐진 남자는 묶인 채로 아사했을 터고, 정신이 나간 여자는 재산만큼은 그 성품에 반비례하여 많던 남편의 폭력에 끝내 반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의 두둔 하에 귀신 들린 여자로서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가 말조차 성하게 할 수 없는 폐인이 되었을 뿐. 모든 것은 사람의 상상력과 집단 단위의 광기로써 행해지는 낡은 관습일 뿐이다. 그러니까, 막 15살을 넘긴 소년 사카타 긴토키가 그런 구담 따위는 전부 우스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날도 긴토키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여즉 신체의 구석구석이 다 여물지 않은 어린아이의 몸으로도, 매일 오르는 산 정도는 쉽게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산에는 등산로를 빙자한 젖은 토지가 이어져 있어서, 그 땅의 위를 좇아 걸으면 나무나 돌 더미 따위의 장애물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가 있었던 탓이다. 그 길을 얼마간 걸으면, 긴토키의 시야에는 여우 한 마리가 어느새 자리를 잡아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여우의 털은 그야말로 금빛으로 반짝여서, 무심코 곤지키야샤金色夜叉의 자태를 떠올리게 하는 몸체로 그 자체를 뽐내었다. 그다지 미와 추의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긴토키에게도, 당장 자신을 따라다니는 영물은 당연하게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스스로도 그것을 아는 것처럼 여우는 살랑거리는 걸음걸이로 긴토키에게 다가와, 그 다리에 몸을 비볐다. 동물에 대한 전문지식은 어린 긴토키에게 당연하게도 없었으나, 이 행동이 자신을 향한 호의에 기반한다는 것 정도는 그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따라다닌다는 말은, 표현 그대로의 말이다. 한 번 그물망 트랩에 걸린 여우를 발견한 긴토키는, 어쩐지 그 여우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 마음이 쓰여 마을 사람 중 누구의 것인지 모를 그물을 잘라내어 여우를 구해준 적이 있다.
“너, 나보다는 산을 잘 알잖아. 저런 허접한 함정에 걸리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라.”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여우는 도망치면서도 몇 번이고 긴토키 쪽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서 여우와의 인연은 끊기지 않았다. 논일과 밭일이 끝나면 수련의 목적으로, 약초를 캘 목적으로, 혹은 단순히 산책의 목적으로 긴토키는 자주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무언의 시선만을 느꼈을 뿐, 어떤 특별한 체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산에는 동물들이 많이 사니까, 그들 중 누군가가 나를 경계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 그렇게 긴토키는 납득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 대놓고 시야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금빛 여우를 보게 된 이후로는 역시 이 녀석, 날 따라다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직까지는 크게 신경을 기울이진 않았다. 풀숲에 있으면 긴 풀에 뒷다리가 덮여 자연스럽게 보이는 상반신은 매끈하고 아름다워서, 저 녀석은 장터에서 얼마 정도로 팔 수 있을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한 번쯤은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여우가 수풀에서 나와 그의 온전한 전신을 드러내면, 긴토키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야 말았다. 역시나 황금으로 빛나는 그것의 꼬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아홉 개의 노란 꼬리는 푹신해 보였고, 그러나 그에 앞서 어떠한 불온함을 긴토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면,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최근 농가에서는 배가 갈라져 죽은 동물들이 속출했다. 헛간의 문을 잠그기 위해 가축들의 상태를 분명 확인함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되어 이상하게 조용한 우리의 문을 열면 그 안에는 낭자한 선혈과 동물의 살점, 이상하리만치 괴로운 혈향이 비강 가득히 파고들어 왔다. 가축 병원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A 씨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A 씨는 곧 동물의 사체들을 매만지고 부검하여 한 가지 결론을 내려 주었다.
“이 사체에는, 심장도 위장도 무엇도 있지만, 간만이 없습니다.”
갑자기 A 씨의 그 말이 떠오른 까닭은, 아마도 어제까지만 해도 콧방귀를 뀌던 산 요괴의 전설이 당장 제 앞에 있는 탓일 터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홀려서 간을 빼어 먹는,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의 이야기. 그러나 그때까지도 긴토키는 우연히 꼬리가 늘어난 여우인가 보지 뭐, 그런 망한 자기 합리화적인 생각을 하며 여우를 바라보았다. 스스로의 행동과 말이 그저 아집에 가깝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괴이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던 소년 긴토키로서는, 눈앞의 짐승-구미호를 보고도 차분하게 반응할 뿐이다. 머리를 비비면 쓰다듬어 주고, 손을 핥아오는 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긴토키의 태도가 신선했던 걸까. 여우는 별다른 위해를 끼치지 않고, 긴토키가 산을 내려갈 때까지 함께 붙어 있다가, 그의 귀갓길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것은 이제 긴토키의 일상의 루틴이 되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그는 산에 올라 자신을 기다리는 여우를 만났다. 당연하게도 여우는 캥 하는 울음소리를 제외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긴토키는 그런 그것의 앞에서 여러 가지 일을 털어놓았다. F 씨가 낫을 잃어버렸는데, 그거 사실은 내가 나무 꼭다리를 베려다가 부숴 버려서 모르는 척 하는 중이야. 요즘은 말야, 뜬금없이 가슴이 아플 때가 있어. 심할 만큼 두근두근하고, 그런데 이유는 몰라. 의사인 Y 씨도 잘 모르겠다더라. 나름 마을의 유일한 의사인데, 그런 태평한 근무 태도가 용서되는 거야? 그런 말들을 들으며, 여우는 그저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긴토키의 무릎 위에 올라와 몸을 말고 눈을 감을 뿐이었다.
“얌전하네, 이 녀석. 하아……, 기왕 마주치기 어려운 것과 만나게 된다면, 여우 요괴보다는 예쁜 여자의 혼령을 만나고 싶었는데…….”
그 말에 여우는 긴토키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자연스럽게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긴토키는, 문득 자신의 손에 와닿은 것이 산짐승의 털이 아닌, 사람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쉽게도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내려다보면, 그곳에 있는 것은 금발을 한 여자아이다.
“이러면 만족해? 사카타 긴토키.”
“……실례지만, 이거 무슨 상황이……입니까?”
“그토록 그리던 예쁜 여자아이야. 만족도는?”
과연, 스스로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예쁜 여자는 나쁘지 않지. 긴토키는 그야말로 한량같은 생각을 하며 눈앞의 그녀의 몸을 훑어보았다. 헐렁하고 하얀, 무늬도 없는 유카타를 입은 그 차림은 평범했으나 익숙하게 아름다운 금발과 그 밑의 귀여운 얼굴은, 확실하게 사람의 이목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꼬리는 왜 그대로인 건데……요?”
“구미호에게 실례네. 본래 여우는 둔갑해도 그 꼬리만은 멀쩡히 남아있다는 괴담, 들어본 적 없어?”
스스로를 구미호라고 칭한 여자아이는, 긴토키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걸었다.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니까, 역시 답례해둘까~ 라고 생각해서.”
“뭐어, 그러시든가.”
“반응이 차갑잖아! 있지, 이제 이름으로 불러도 돼. 내 이름, 미치루라고 해. 키하라 미치루.”
그날 이후로 긴토키는 여우가 아닌 미치루를 보기 위해 제집처럼 산을 드나들었다. 아직 스스로의 성벽에 대한 확실한 기준도 없을, 막 2차 성징이 올법한 남자아이다. 인간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외모를 하고 있고, 예쁘기까지 하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미치루와 함께하는 하루는 언제나 즐거웠다. 이틀째에도 사흘째에도, 긴토키는 미치루를 만나 서로를 꽉 끌어안거나, 가끔은 나무 그늘에서 몰래 입을 맞추었다. 평온한 나날이었다. 언제까지나 추억이 되어 결정처럼 목구멍을 틀어막을 괴로움 따위는 여즉 알지 못한 채로…….
“긴 쨩, 긴 쨩은 말이야, 최근의 삶은 어때?”
새로운 애칭으로 긴토키를 부르며, 분명 그보다 몇 배는 긴 삶을 살아왔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최근의 삶이라는 게 뭔데……요? 의미 모르겠는데.”
일단은 자신보다 확연히 연장자로 보이는 그녀의 앞이니 어색한 경어체가 튀어나온다. 미치루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와 마주하는 나날 말이야. 난 긴 쨩을 무지 좋아하거든.”
갑작스러운 고백에 긴토키는 당황하는 듯하더니 곧 회답을 위해 입을 열었다.
“나, 나도 미치루 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뭐랄까…….”
“뭐랄까?”
“무언가, 잊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는 것만 같아서…….”
그 말에 미치루의 눈빛은 아주 잠시 냉기를 머금었다가 다시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왔다.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그런 거, 전혀 없나요?”
긴토키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미치루의 말을 한 번 더 입에 담았다.
“응. 당연하게도.”
그리고 미치루는 눈을 감았다. 긴토키의 손을 잡은 채로, 어딘가 머리가 아찔한 상태로 그 깊이가 끝없는 래빗홀에 빠져들 듯이…….
……미치루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인 긴토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꿈은 여즉 평안한 것인지, 별다른 신체적 이상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미치루는 방금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머리나 스타일을 한 채로, 제 무릎을 배고 누운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긴토키는 더 이상 소년의 형상을 하지 않았고, 재를 들이마신 탓인지 간혹 콜록이는 그였으나, 의식이 돌아오는 일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원인 모를 불꽃이 인 가부키쵸의 거리에서, 겨우 긴토키를 구해 대피한 것은 미치루였다. 그러나 혼자서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그녀가 고른 것은 긴토키 단 한 명의 안전이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불타는 거리로 돌아가 사람들을 구하려는 긴토키를, 미치루는 가볍게 잠재웠다. 구미호의 주술은 사람을 잠재울 수 있고, 나아가 환각을 빙자한 꿈을 꾸게 할 수도 있었다. 비록 긴토키의 의견을 듣고 행한 주술은 아니었으나, 미치루가 그에게 품은 것은 너무나도 솔직해서 어쩌면 날 것으로도 보이는, 사랑스러운 선의였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이런 현실 같은 거,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계속 계속, 행복한 꿈을 꾸어요.”
…대답은 없다.
“긴토키 씨, 사랑해요.”
……대답은 없는 채였다. 미치루는 제 뒤로 길게 늘어진 꼬리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파묻힌 금빛 꼬리는, 결코 다시 빛나는 일이라곤 없을 거라는 듯 더럽혀진지 오래였다. 미치루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신이 만든 꿈의 세계에서만은, 긴토키 씨와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당신을, 언제고 마주할 수 있으니까. おやすみなさい